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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많다고 적을 가벼이 보지 않는다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19년 12월 03일
ⓒ e-전라매일
“삼군이 많다고 해서 적을 가볍게 보지 말라. 명령이 중하다고 해서 꼭 목숨을 버리려고 하지 말라. 자기 몸이 귀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천시하지 말라. 자기 혼자만의 견해로 여러 사람을 어기지 말라. 말로 꼭 그렇다고 하지 말라.” (‘육도’ ‘용도(龍韜)’에서).
요컨대 자기 군대의 숫자가 많다고 적을 깔보지 말라는 말이다. 창이나 칼 같은 냉병기로 싸우던 시대에 무기나 군 장비는 기본적으로 그다지 다를 게 없었고 작전 형식도 단순했다. 따라서 승부는 일반적으로 군대의 달려 있었다. 그래서 『관자 管子』 「칠법 七法」에서는 “많은 수로 적은 수를 치면 10전 10승이요. 100전 100승”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인류의 계략과 연계돼왔고, 역사상 소수로 다수를 물리친 예는 얼마든지 있었다. 이 경우 승리를 거둔 쪽은 늘 지혜와 계략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패한 쪽은 대부분 지혜가 부족했거나 적을 깔보았거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전쟁은 국가의 생사존망이 관계된다. 장수가 명을 받고 군을 통솔한다는 것은 국가존망의 큰 책임을 짊어지는 것으로, 승리하면 국가가 생존하겠지만 패배하면 나라가 망한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든지 “이익에 합치되면 움직이고 그렇지 않으면 멈춘다.”(『손자병법』 「모공편 謀攻篇」)는 기본전략을 상기하고, 군을 자신의 개인병력으로 여겨서도 안 되며, 숫자가 많다고 적을 얕잡아 보아서도 안 된다. 그러지 않았다가 패하고 나면 만고의 역적 내지는 죄인이 돼버린다. 장수는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삼국시대의 유명한 관도(官途) 전투에서 원소(袁紹)는 정예 보병 10만과 기병 1만으로 허창(許昌)을 공격하려 했다. 대장 저수(沮授)는 우리 힘을 기르면서 상대가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공격한다는 합리적인 계획을 건의했다. 모사 전풍(田豊)도 상대방이 미처 예상치 못한 기묘한 계략으로 제압하자며 습격을 제안했다. 그러나 원소는 병력 수만 믿고 조조를 ‘손바닥 뒤집듯 쉬운’ 상대로 깔보았다. 조조의 병력은 1만에 지나지 않았지만 계략을 잘 활용하고 또 측근의 건의를 잘 받아들여, 때와 대세를 살피면서 기민한 작전을 구사함으로써 주도권을 장악해나갔다. ‘성동격서’의 전략으로 원소군이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끝내 원소를 크게 물리쳤다. 원소는 무려 7만여 병사를 잃었다.
382년,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은 동진(東晉)을 공격하려고 했다. 이때 누군가가 동진은 장강(長江)이라는 험난한 지역을 확보한데다가 백성들도 기꺼이 앞장서서 힘을 내고 있어 승리하기 힘들다며 공격하지 않는 게 좋다고 건의 했다. 그러나 부견은 우리 쪽 숫자가 많아 “말채찍만 던져도 강을 막을 수 있고, 발만 담가도 그 흐름을 끓을 수 있는데” 동진이 무슨 수로 우리를 막느냐며 충고를 무시했다. 이듬해 부견은 무려 87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동진을 공격, 비수에서 전투를 벌였다. 결과는 87만 대군이 8만 군에게 대패를 당했다. 자기 숫자만 믿고 상대를 얕잡아본 결과였다.
537년, 동위(東魏) 고환(高歡)은 20여만의 대군으로 서위(西魏)를 공격했다. 당시 서위의 승상 우문태(宇文泰)의 군은 1만이 채 안 됐다. 고환은 숫자만 믿고 충고도 듣지 않은 채 곧장 진격해 들어갔다. 전략·전술은 아랑곳 하지 않고 무작정 밀고 들어갔다. 반면에 우문태는 중과부적의 형세에서 적의 정황을 면밀히 정찰한 다음 지형을 교묘히 이용했다. 숲 속에 병사를 매복시켜놓고 동위의 군대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갑자기 북을 울리며 공격해서 동위군을 대파했다. 동위군은 8만 명이 전사했고 갑옷과 무기 18만 점을 잃었다.
군이 국가의 안위와 직결됨에도 고환은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 싸움에 앞서 후경(侯景)은 고환에게 이번 출병은 규모가 방대하기 때문에 만에 하나 실패할 경우 그 후환이 엄청날 것이라고 충고했다. 고환이 이 말을 받아들여 신중하게 군사를 활용했더라면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만약 고환이 때를 기다렸다가 공격하자는 장사(長史) 설숙(薛琡)의 건의를 받아들였거나, 점진적으로 조금씩 공격해 들어가자는 후경의 전략을 따랐다면 결과는 고환의 승리로 끝났을 가능성이 컸다. 고환은 그저 ‘삼군의 숫자만 믿고 적을 얕잡아 보아’ 합리적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독단적으로 군을 움직이는 바람에 대패하고 말았다.
이상의 몇몇 사례들은 ‘삼군이 많다고 해서 적을 가볍게 본’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숫자만 믿고 적을 깔보는 장수가 가장 기피해야 할 사항인바, 장수된 자들은 이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정랑 언론인
前 조선일보 기자
(서울일보 수석논설위원)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19년 1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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