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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칼럼

<살며 생각하며•2>약속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빨리 자라 무엇이
되어야 했다. 이후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주제
로 한 「새벽달」이란
시를 통해 시인이 되었
고, 그로인해 또 오늘
내가 봉직했던 대학의
교수도 되었으니, 어찌
보면 그 어린 날 나와의
약속이 오늘의 나를
세워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0년 01월 12일
ⓒ e-전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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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가 없던 옛날에는 해와 달의 움직임을 보고 거기에 맞추어 약속을 했다고 한다. 수시로 변하는 세상에 변하지 않은 해와 달을 기준으로 삼아 약속을 했던 모양이다. 노(魯)나라에 미생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하루는 사랑하는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는데 그날따라 폭우가 쏟아졌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데 강물이 계속 불어났다. 미생은 그래도 오지 않는 그 여인을 그곳에서 끝까지 기다리다 그만 불어나는 강물에 익사하고 말았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의 고사(故事)가 그것이다.
명목(名目)에만 매달려 귀중한 목숨을 가벼이 여겼다는 비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약속을 자기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가벼이 여기는 오늘의 세태에 미생의 그러한 우직성이 오히려 돋보이는 세상이 아닌가 한다.
‘약속’은 서로가 서로를 믿고 다짐한 언약이다. 훗날 어떤 핑계를 앞세워 말을 바꿀까 염려가 되어 미리 다짐한 뜨거운 가슴이다. 그래도 못 미더워 이를 문서로 만들어 수결(手決)을 남기고 심지어 혈서를 쓰면서까지 약속을 하곤 한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 그것은 자기 자신을 존귀하게 세우는 그의 인격이요 상대에 대한 예의다. 아니 자기에 대한 예의라고 본다.
중국 광무제 때 송홍(宋弘)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가난했지만 훗날 대사공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마침 홀로 된 광무제의 누이가 송홍을 좋아하게 되자 광무제는 송홍을 불러 “흔히 ‘사람들은 귀하게 되면 옛 친구를 버리고,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꾼다.’는 말이 있는데 어찌 생각하느냐”며 그를 회유하였다. 그러나 송홍은 “가난하고 어려울 때 사귄 친구는 잊을 수 없고(貧賤之交 不可忘), 어려울 때 고생을 함께한 조강지처(糟糠之妻)는 내 보낼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송홍의 아름다움은 여기에 있다. 비록 그들이 훗날 변치 않기로 그리하여 그들의 약조를 오늘날처럼 무슨 공증을 따로 한 바 없었다 하더라도, 한 때의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음은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인간적인 믿음과 신뢰가 서로 간에 없다면 우리는 인간의 존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비록 꿈속에서 한 약속이라도 약속은 약속이기에 변명을 앞세워 약속을 가벼이 여김은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가벼이 저버리는 자해(自害) 행위에 다름 아니다.
어느 봄날 법정 스님이 섬진강 가를 여행하게 되었다. 매화꽃이 하도 예쁘게 핀 어느 산자락 외딴 집이 눈에 들어와 올라가 보았다. 허물어져 가는 빈 집 벽 한 쪽에 서툰 글씨로 “우리 엄마 아빠는 돈 벌어서 빨리 자전거 사주세요? 약속” 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친구들이 자전거 타는 걸 부러워하면서 엄마 아빠께 자전거 하나 사달라고 졸랐을 그 아이를 생각하며 가슴이 찡했다던 법정 스님의 글이었다. 세월이 지나 그 아이도 이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어린 날의 약속을 생각하며 남보다 열심히 살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약속이란 다른 사람과의 약속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약속도 중하고 귀하다. 거기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진정 그리고 뜨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날 나도 한 때 월사금을 제때에 내지 못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던 일이 있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어머니에게 붙들려 혼이 나면서 함께 울던 날이 있었다. 그때 어린 나이에도 나는 ‘훗날 커서 어머니의 고생이 헛되지 않게 해 주겠노라’고 혼자 마음속으로 약속을 한 바 있었다.
그래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빨리 자라 무엇이 되어야 했다. 그리하여 ‘한 인간이 정직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면 그 끝은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 그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후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주제로 한 「새벽달」이란 시를 통해 시인이 되었고, 그로인해 또 오늘 내가 봉직했던 대학의 교수도 되었으니, 어찌 보면 그 어린 날 나와의 약속이 오늘의 나를 세워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동수 시인
본지 독자권익위원장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0년 0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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